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영화리뷰: 원초적인 행복감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영화리뷰 2020. 5. 20. 20:30

    1.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맺는 엄마와의 관계는 그 이후의 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신생아에게 있어서 엄마는 자신이 살아있게 해주는 모든 것이다.

    '엄마는 밥이고, 침대이고, 운동기구이고, 그리고 햇빛이다.'

    평생을 거치면서 조금씩 엄마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채우지만, 그 원초적인 관계는 영원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엄마’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하는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결국은,
    어린 시절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따스한 시선의 대체물일 것이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사람은 사랑을 받기 위해 산다.'


    2.
    이 영화의 시초는 ‘상처받은 남녀가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던 감독의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이미지에 맞는 텍스트가 공지영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고, 다시 글자를 영상으로 바꾸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감독의 발상은 틀렸다. 비현실적이다. 상처받은 남녀는 서로를 구원할 수 없다. 상처받은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볼 수 없다. 자신의 상처에 갇혀 있을 뿐이다.

    누군가 자신의 상처를 알아보아주고 다가와주어도 마음을 열까 말까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썩은 고름 냄새를 참고 다가가 손을 내민단 말인가?

    그래서 소설과 영화에서는 카톨릭 교정사목 수도자라는 장치를 써서 현실감을 부여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교정사목을 진심으로 행하시는 수도자 분들이 나온다. 엑스트라처럼 등장하지만 그 분들의 보호막이 있었기에, 뭔가 초월적인 분위기 안에서, 그런 것이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뭔가 그럴 듯하게 고개가 끄덕여 진다.


    3.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엄마’였다.

    남녀가 살아온 과정은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엄마답지 않은 엄마를 두고 있고 사랑의 결핍에 시달렸다. 그것이 한 사람에게는 세 번 자살시도로, 다른 한 사람에게는 누명을 뒤집어 쓸 수 있는 상황에서 그냥 사형수가 되기를 선택해 버린 것으로, 다르게 드러난 것일 뿐이다.

    극단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현실에서도 사랑의 결핍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담이 필요하다.

    어쩌면,
    종교와 상담은 매우 동일한 방향의, 이상적인 목적을 지향한다.

    정말 소설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비현실적인 기적이 일어나기를 이상적으로 기대한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물고기가 사람이 된다고 해서 기적이 아니야. 사람이 변하는 것이 기적이지."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
    사랑주지 못한 사람이 사랑주는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인간의 힘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을 넘어선 절대적인 조물주 신의 영역에 연결되었을 때, 기적은 일어난다.

    인간을 사랑하기에
    외아들을 희생시키는 하느님아버지의 사랑,
    인간을 사랑하기에
    내 몸을 먹으라고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
    인간을 사랑하기에
    세상끝까지 함께 해주시겠다는 성령님의 사랑,

    삼위일체인 신의 전지전능함으로 기적이 발생한다.


    4.
    내 몸을 먹으라고 내어주는 예수님의 마음은 마치...
    엄마가 자신의 살과 피로 젖을 만들어 아기에게 그 젖을 내어주는 행위와 비슷하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엄마’ 그 사랑의 원형이,
    지금 여기,
    매일미사 속의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너무 쉽게 주어져 숨어 쉼쉬고 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윤수가 맨 처음 마음을 열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성당에서 유정이 사온 전복죽을 떠먹으면서 빙긋이 웃던 그 순간, 그것이 유정이 윤수에게 베푼 성찬의 전례이었다.

    나를 위해 준비된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느낌은,
    신생아기에 어머니 젖가슴에 파묻혀 젖을 먹으며 느꼈던 원초적인 행복이며,
    오늘도 매일미사 성체성사에서 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행복은, 너무 가까이에, 너무 일상적인 모습으로, 숨어 있다.


    5.
    그러나,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 원초적인 행복감을,
    이세상 어떤 것에서,
    어떻게든 비슷하게라도 다시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

    '재물'이며 '명예'며 '권력'이며 헛된 신기루를 향하여 달려간다.

    짧다면 짧은 일생,
    지상의 나그네 길,
    가나안 땅을 위한 기나긴 사막의 길,
    그 길 위에 얼마나 많은 신기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잡는 순간 사라지고,
    더 큰 것, 더 큰 것, 더 큰 것을 원하게 하는,
    그 허상같은 행복감...
    그 타는 목마름...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사람은,
    진짜 사랑을 가까이 내버려두고,
    가짜 사랑을 받기 위해 헤멘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