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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 영화리뷰: 시의 본질 = '본다'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영화리뷰 2020. 5. 23. 01:19


    1.
    여기 하나의 그림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할머니라고 ‘본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젊은 여자라고 ‘본다.’ 어쩌면 ‘본다.’라는 행위는, 그 이전에 이미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상(象)을 반영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가 왜 이렇게 보고 있는지를 통해서 자기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도 있다.

    2.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는 시 강좌를 듣는 주인공 미자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 강좌를 미자와 함께 듣게 된다. 그리고 전혀 시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손자와 손자친구들, 마치 물건을 배상하듯 돈으로 무마하려는 부모들, 학교이름에 먹칠을 할까봐 전전긍긍한 교사들, 그 모든 사건에 무관심한 이웃들...... 시 강좌를 듣는 순간의 미자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시달리는 미자가 교차 편집되면서, 현실이 더욱 아리게 느껴진다.
    가슴 아린 얼얼한 그 느낌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반문해보게 만든다. “미자는 왜 자살을 선택해야 했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성폭행을 저지른 손자 대신 속죄하는 마음으로 미자는 죽은 소녀의 자취를 더듬어 걸어간다. 그 소녀가 머물렀던 교실, 복도, 운동장,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섰던 다리. 그 다리 위에서 아득한 강물을 내려 본 순간 바람이 불어와 모자가 날아가 떨어져 버린다. 강물에 떨어져 물에 잠겨가는 모자를 보면서 문득 느낀다. 내 육신도 저 모자와 같은 허울이 아닐까?
    그 순간 이후로 미자는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해간다. 자신에게 몸을 요구하는 중풍 노인에게 몸을 주기도 하고, 손자를 데려다가 먹이고 발톱까지 다듬은 다음 경찰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시 강좌를 듣는 마지막 날에 꽃다발과 함께 유언과도 같은 시를 김용탁 강사에게 보낸다.
    그 시의 제목은 상징적이게도 ‘아네스의 노래’이다. 아네스는 ‘천주의 어린양’이라는 뜻이다. 모두의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목숨을 던진 성폭행 당한 소녀의 세례명이 아네스였다. 또한, 소녀의 마음을 절절히 느끼고 손자의 죄값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목숨을 던진 미자가 또 한명의 아네스였다.

    3.
    여기 하나의 영화가 있다. 전주교구미디어포럼에 왔던 회원님들 중 어느 누구도 똑같은 시선은 없었다. 제각각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보았고,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른 시선을 들었다. 그렇게 보고 듣는 과정 안에서, 나 자신을 마치 거울에 비추듯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부조리한 사건에 반응하는 나 자신을 물끄러미 멀찍이서 보기도 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에 대해 나눌 때는 마음을 놓아버리고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 더 이상 ‘시’를 찾지 않는 속물과도 같은 세상에서 한편 한편의 ‘시’처럼 살아내려 애쓰는 회원님들과 함께 간만에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사실 나도 영화 속 속물 중에 한 사람일지 모른다. 세상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슈들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는지. ‘시’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찾지 않는 부류의 사람은 아닌지. ‘시’라고 상징되는 그 어떤 아름다웠던 순간을 더 이상 살아내려 하지 않는 사람은 아닌지.
    시를 찾고 살아내려 하는 것은 복음적으로 보면 ‘깨어있음’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문득 든다. “늘 깨어 있으십시오. 쉬지 않고 기도하십시오. 작은 일에도 감사하십시오.” 귀에 익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갑자기 뎅~하니 맑은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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