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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 영화리뷰: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감싸안는 침묵이 아닐까?'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영화리뷰 2020. 5. 23. 01:17
1.
때로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다. 그저 따스함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도 없는 호젓한 성당에서 가만히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숙이 어딘가에서 따스한 기운이 차오르곤 한다.
‘위대한 침묵’을 보고나서 느낌도 그러했다.
2.
오래간만에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60을 바라보는 엄마와 30을 넘긴 딸이 다정하게 팔장을 끼고 영화를 보러갔다. 가톨릭 전주교구청 4층에서는 수요일 2시마다 영화를 상영한다.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기에 적절한 영화이기도했지만 특별한 아름다움에 관한 영화라고도 생각되어, 일부러 갔다.
그런데 정작, 영화상영이 시작되자마자 꾸벅꾸벅 졸았다. 다큐멘터리 형식이기에 음악도 특수효과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영화내용의 전부였다. 엄격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 특징인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하루하루가 단조롭고 차분하게 펼쳐졌다. 장장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내내 핸드폰 진동 울리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긴긴 침묵이 흐른 후, 전주교구청 건물을 나서자마자 똑같은 도시가 뭔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뭔가 너무 시끄러웠다. 엄마가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어?”하고 물어보셨지만 넘쳐나는 소음에 묻혀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차분한 느낌을 간직하고 싶었기에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엄마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손을 꼭 잡고 말없는 감동을 나눴다. 말하지 않았기에 말보다 더 깊은 감동을 나누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영화 안에서 찾고자 했던 특별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영화 밖에 있었다.
3.
이해인 수녀님의 시 ‘사랑한다는 말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침묵인 것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침묵’은 먼 나라 트라피스트 수도원에만 있지 않고, 지금 여기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있다.''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 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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